우리는 무언가를 강조할 때 100% 확신한다는 말을 자주 한다.
그러나 그런 100% 확신은 역설적으로 100% 불확신이 된다.
왜냐하면 1%만 틀려도 100% 틀린 것이 되는 역설이 성립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주식전문가가 A주식이 오를 확률은 100%라고 단언하면 1%만 틀려도 100% 엉터리 예측이 된다.
상식적 입장에서 보면 1%의 차이는 무시해도 좋을만큼 비중없는 수치이다.
그러나 100%를 강조하는 바람에 1%만 틀려도 100% 엉터리 예측이 되고 만다.
이처럼 1%만 틀려도 100% 엉터리가 되는 현상을 “확신의 역설”이라고 한다.
이런 확신의 역설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냉철한 이성적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이 내리는 확신은 부족한 인간이 부족한 분석자료를 바탕으로 하여 내리는 부족한 결론이다.
인간 세상에는 완벽한 인간도, 완벽한 분석자료도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부족한 인간이 부족한 자료를 분석하여 내리는 부족한 결론이 어떻게 100% 확실할 수 있단 말인가?
이런 상식에도 불구하고 100% 확실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특히 정치분야, 주식분야, 부동산분야 같은 투기분야에 그런 자들이 많다.
자기 말만 들으면 출세한다, 일확천금한다는 식의 말을 밥먹듯 하고 다니는 사기꾼들이 바로 그런 자들이다.
유일신 하느님의 경우도 똑같은 역설이 성립된다.
유일 신앙인들의 주장에 의하면 하느님은 전지전능한 존재로서 1%의 부족함도 없는 분이라고 한다.
그러나 당장 코로나를 막지도 못하고 코로나로 죽어가는 환자들을 고치지도 못한다.
코로나로부터 고귀한 생명을 구하는 자는 거꾸로 부족하기 짝이 없는 인간이다.
왜냐하면 부족한 인간은 백신개발로 환자들을 코로나로부터 구해낼 수 있지만 전지전능한 하느님은 그 전지전능 함에도 불구하고 단 한 사람의 생명도 살리지 못하는 역설이 성립하기 때문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는 말은
동서를 불문하고 누구나 받아들일 수 있는 상식이다.
이런 상식은 스스로 최선을 다하지 않는 자에게 하늘은 결코 은총을 내리는 법이 없다는 말이다.
이렇게 볼 때 천당과 지옥은 있다고 가정하더라도 자기가 생전에 행한 대로 가는 곳이지 믿음에 따라 가는 곳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믿음을 강요하며 믿지 않는 자들을 이단자라며 닥치는 대로 처단하는 광신자들도 그 믿음의 힘으로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외치는 종교인은 아무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이 이런데도 오늘도 동네방네를 돌아다니면서 마이크까지 동원하여 믿으면 천당가고 믿지 않으면 지옥간다고 외치는 신앙인들이 많다.
이런 기막힌 역설이 바로 신앙적 역설이다.
로마제국의 16대 황제이자 5현제(賢帝) 중 한 사람이었고 스토아학파(Stoicism)의 철학자로서 『명상록(Tōn eis heauton diblia: 자신을 향한 고백)』을 남긴 인물로 유명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Marcus Aurelius, 서기121~180년)는
“사람이 신을 만드는 것이지 신이 사람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라는 말을 남긴 사람으로 유명하다.
즉, 세상에 있는 모든 신상들은 조각가들이 돌로 만든 석조상을 신앙인들이 신성을 가진 신상으로 둔갑시켜 놓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사람들은 오늘도 신성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그런 석조부처상과 석조예수상 앞에서 소원을 빌고 기도를 한다.
말로써 못할 일은 하나도 없다.
말로 보내는 인공위성은 1초 만에 얼마든지 달나라로 보낼 수 있듯 말로써 하는 구원과 은총은 한도 끝도 없이 무한히 전개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옥동자를 점지해 주는 자는 부처님이 아니라 인공수정을 성공시키는 의사들이듯 실제로 우리를 천국으로 보내 주는 자는 부처님과 하느님이 아니라 하늘을 감동시키는 우리들의 지성이다.
그래서 예부터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다.
중세 때 흑사병으로 유럽인구의 30% 이상이 희생되자 전체 유럽인들이 교황의 집전아래 밤낮으로 흑사병을 사라지게 해달라고 천주에게 기도했지만 천주는 단 한 사람도 살려내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지금의 코로나 앞에서도 전지전능한 절대자로서의 신은 아무 일도 못하고 있다.
아니 오히려 코로나 확산을 부채질하고 있다.
이런 엄연한 현실은 아무리 수없는 간증으로 감싸고 변호해도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상식적, 이성적 한 마디보다 더 설득력이 없다.
이런 신앙적 역설의 현장이 바로 인간 세상이고 이런 역설의 현장이 끝없이 이어질 곳도 바로 인간 세상이다.
실제로 인류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런 역설의 현장을 벗어난 적이 없다.
구더기가 영원히 똥통에 살면서도 행복해 할것처럼 우리 인간 역시 영원히 이런 역설의 현장에 살면서도 행복해 할것이다.
신앙이 만능은 아니듯 이성 또한 만능은 아니지만 다른 동물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인간의 최고 재산인 냉철한 이성은 코로나라는 인류적 비극 앞에서 초라하게 무너지고 있는 신앙의 역설을 꼭 한번 되새겨 보기를 촉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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