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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회관 휴게실/세상이야기

중용이란...

by Ajan Master_Choi 2019. 3.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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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용이란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요?

중용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 속에 담긴 철학은 어떤 것일까요?”

 

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

헐~잠시 고민에 잠기지요ㅜㅜ

 

도대체 중용이란 무엇인가?

 

요즘처럼 세상이 시끄러울때는 더욱 더 고민에 빠지게 되는데요

그래서 아마도 사람들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침이 없는 것이 좋다며

"중용을 지켜야 한다"

고 말을 하나 봅니다.

 

우린 흔히 중용이란

중립을 지킨다 or 중간의 입장 등의 의미로 이해하고 있으며

심지어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라는 인식으로 중용을 이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유교의 교육, 교양 서적인 사서삼경은

유교 사상의 가장 핵심적인 책들입니다.

다들아시다시피^^

사서는 논어, 맹자, 대학, 중용을

삼경은 시경, 서경, 역경을 말하는 것입니다.

 

기원전 5세기경

공자의 손자인 자사가

이 사서삼경중 중용을 집필했는데

중용은 극단적인 대립과 갈등이

사회를 멍들게 하고 있는 오늘날

더욱 절실히 요구되는 사상이라 할 수 있는데요

그렇다면 중용의 참된 뜻은 무엇일까요?

 

한마디로 어떠한 일에서나

사실과 진리에 맞도록 하여

편향, 편중하지 않는 것이 중용이라 했습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인간적 욕심과 도덕적 본성이 함께 내재되어 있어서

지혜로운 사람이라도 인간적 욕심이 없을 수 없으며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도덕적 본성이 없을 수 없으니

두 마음을 잘 다스리는 이치가

중용이라 한것입니다.

 

도덕적 본성상

자기 자신이 주체가 되도록 하고

인간적 욕심이 매번 도덕적 본성의 명을 듣게 하는 것이

중용의 도를 실천하는 길인데

이를 위하여 성, 도, 교라는 개념으로

천도와 인도와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성은 하늘이 준 사람속에 있는 하늘의 속성이고

도는 하늘이 부여한 본연의 성을 따르는 것인데

효도와 자식사랑,

형제간의 우애,

가정의 화목,

이웃 사랑,

등이 도인 것입니다.

 

교는 도를 마름질 하는 것으로 도를 구체화한

교훈, 예절, 법칙, 제도 등으로 구체화된 것을 말합니다.

 

중용의 반대말은 극단입니다.

 

중국의 전국시대때

양주라는 사상가가 있었는데

그는

‘세상에 이로움이 될지라도 내 털 하나 뽑아주지 않겠다’

는 극단적인 위아주의자 였고

또 묵자는

‘세상에 이롭다면 내 몸을 산산이 부서뜨려서라도 돕겠다’

는 극단적인 겸애주의자 였습니다.

 

그러자 자막이라는 사람은

이 두 사상이 매우 극단적이라고 생각해서

그는 중도를 취했는데

반쯤은 나를 위하고

반쯤은 세상을 위해서

마음을 쓰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맹자는

이런 자막의 태도가

극단적인 위아주의나 겸애주의보다는 낫지만

반드시 중용은 아니라고 했는데

경중을 고려하지 않고

항상 고정된 중도를 취하는 것은

중용이 아니라는 것...

그러니까

우리가 알고있는

'중간을 지킨다'

는 것은 진정한 중용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진정한 중용은

단순한 중간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진보와 보수의 중간인 중도,

부자와 빈자의 중간인 중산층,

우월과 열등의 중간인 평범 등은

중용이 아닌 것입니다.

 

진정한 중용이 되려면

양극단을 모두 이해하고 품을 수 있어야 합니다.

 

진정한 중용은

상황성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항상 중간과 같은 지점을 고수하는 것이 아니라

때에 맞는 중용,

즉 시중을 해야 합니다.

 

시중이란 중용 2장의

'군자가 중용을 이룸은 때에 맞게 하기 때문이다'

라는 문장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맹자는 여러 성인을 열거하면서

공자를 성인 중에서도 때에 딱 맞게 대처하신 분이라 했는데...

백이, 숙제는 성인 중 맑은 사람,

이윤은 성인 중 맡길 만한 사람,

유하혜는 성인 중 화합하는 사람으로 처세가 고정되어 있는데 비해

공자는 어느때든 알맞게 대처하는 분으로 높이 받들어졌다 했습니다.

 

그러니까 중용의 시중이란

어느 한곳에 고정되어 있는것이 아니라

사안과 사태에 따라 가장 알맞은 판단과 결정을 내릴 수 있어야 하는 것...

 

때로는 극단적으로 보수적인 결정을,

때로는 극단적으로 진보적인 결정을

내릴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보수와 진보를 떠나

바른일에는 언제나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 칭송하고

그릇된 일에는

언제든 가차없는 질타를 행해야 한다는 것인데

여기서 가차는

사정을 보아주는 것이나 용서함이 없다는 뜻입니다.

 

이는 기회주의자나 무원칙과는 다릅니다.

 

기회주의자는

자기 이익을 챙기는 사람이고

무원칙은 주관이 없는 사람이지만

시중은 공평무사함과 뚜렷한 주관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진정한 중용을 실천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합니다.

 

마음을 비우고 사욕을 내려놓되

전체를 나처럼 아끼고 사랑하는

인의 심성으로 관조하되

사태를 정확히 파악하고

해결 방안을 찾아낼 수 있는

지의 능력을 겸비해야 합니다.

 

세상이 어지러울수록

끊임없이 성찰하고

배워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또 중용이라는 글자가

만들어진 저변을 살펴보면,

중용의 한자는

가운데 중(中)자와

쓸 용(庸)자로 만들어졌습니다.

 

중국 청나라의 언어학자 단옥재는

“갑골문에 보이는 중(中)자는 깃발이 펄럭이는 모양이다”

라고 했어요

깃발은 바람이 부는 방향에 따라

상하, 전후, 좌우로 나부끼지만

그러나 그 실체는 깃대라고 하는 주체입니다.

깃발은

바람의 상황과

여건에 따라 펄럭이지만

축인 깃대는 움직이지 않으니

깃발은 깃대에 묶여 있어야 할 필연적 관계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갑골문로 본 중자는

중심, 중점 혹은 센터라는 의미를 낳고 있고

안팎을 의미하는 내외에서 안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이는

“중이란 늘 자기와 타인, 안팎의 연관성에서 판단되거나 설정되는 개념어”

라고 말하고

또 어떤이는

“중자는 나와 너, 혹은 내면과 외면, 중심과 주변 상과 하 사이의 긴장관계 그 사이의 무게 중심이나 기준을 일러주는 잣대에 해당하지만 그것은 시간적, 공간적, 다중적 양단을 보여 준다”

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중이란

정도와 적중을 말하는 것으로서

산술적, 기계적 평균이 아니란 뜻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중용을 행복한 삶이라고 말했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단단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강해지면 만용하게 되고

약하면 한없이 비겁해 짐으로

중간이 바로 용기 즉,

“용기가 중용인 것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또 너무 금욕적이면 그것도 문제라고도 했습니다.

 

이는 자기를 헤치기도 하지만

사회를 원활하게

건강하게 만들지 못한다는 이유에서 입니다.

 

또 지나친 탐닉도 안 좋지만

지나친 인색도 안 좋고

지나친 낭비도 안 좋다고 했습니다.

 

적절한 절제와 적절한 관대함이 있어야 한다는 것,

이것이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진정한 중용입니다.

 

이처럼 중용이란

우리 사회의 전반에 걸처 근본이 되는 것이며

우리의 삶에 있어서도 반드시 지켜야할 사상이고 행해야할 표상입니다.

 

그래서 중용이 바로 쓰이는 사회는

정의롭고 훈훈한 사회입니다.

 

열심히 일하고 정당하게 대우 받고

해야할 일은 넘쳐나고 사람들은 행복하고

언제나 서로를 보듬고 따스하게 손잡고 함께갑니다.

 

어느 한곳에 치우침이 없이

과하거나 부족함도 없으며 언제나 떳떳합니다.

 

이제는 중용을 지향하는 자 스스로를 중도라고 자처하는 자들이 움직여

진정한 중용이 살아 숨쉬는 사회와 국가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제 더 이상 침묵하는 것은

중용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름다운 사람들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