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째서 난 그 손을 한번 잡아주지 못했을까."
"어쩌면 그 손이 이 세상 무엇보다 부드럽고 따뜻했을지도 모르는데,..... “
"사업실패 "
"빨간딱지 "
허기진 가난은 초대하지 않아도 스스로 길이 되어 우리 가족 앞에 찾아왔고 가난이 싫은 엄마는 화려함을 쫓아 올려다봐도 말이 없는 하늘처럼 사려져 버렸습니다.
중학생인 동생과 저는 급식비조차 내지 못해 점심시간엔 친구들과 창밖의 눈발처럼 이별을 해야만 했고요.
아버지는 실없는 바람과 멍 한 구름을 안아주고 받은 돈으로 시장에 들러 콩나물과 두부 한 모를 사 가지고 들어오십니다.
비가 와 공치는 날엔 그것조차도 외상으로 가져올 때가 많지만요.
아버지의 자리를 지키시려 하루를 버텨보지만 달력엔 동그라미보다는 가위표가 더 많아져 가고 있었습니다.
모처럼 삼겹살이 먹고 싶다는 아들을 데리고가 고기 2인분을 시켜주고선 아버지는 일이 있다며 문을 열고 나가버립니다.
세어볼 돈이 없는 까닭에 식당 먼 모퉁이 골목길에서 쪼그리고 있던 아버지는 식사가 끝나 무렵이 되어서야 문을 열고 들어섰니다.
아버지의가락가락 찢어진 마음만 내보인채 동네 슈퍼 앞을 지날 때 서너이 앉은 아줌마들이 하는 얘기가 뒤통수를 파고 들어옵니다.
춤바람이 나서 집을 나갔다는 소리에 속이 상한 아버지는 잠든 아이들을 바라보며 아버지는 머리에 이별을 이고 앉아 생각만 해도 차오르는 아픔 사이로
"얼마나 울고 싶었을까 ....."
저녁 대신 소주 한잔에 지나간 눈물을 불러 비우고 계십니다.
밤바람이 말을 달리던 새벽녘 지붕위를 부슬부슬 걸어 다니던 비가 종종걸음으로 뛰어다니더니 벽에 난 쥐구멍으로 물이 들어와 장판 밑으로 배겨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서둘러 옆에 있는 걸레로 막아보지만 금방 젖어들고 맙니다.
아버지는 할 수 없다는 듯 자신의 손을 집어넣어 그 물을 막고 있었습니다.
달빛에 젖은 한 손으로 구멍을 막고 별빛이 스친 나머지 한 손으론 소주잔에 인생을 부어 삶을 노래하면서 말이죠.
엄마의 사랑을 찾다 아침을 맞은 아이들의 눈에 한 손으로 구멍을 막고서 지쳐 잠들어있는 아빠를 흔들어 깨웁니다.
비가 잦아들기만 기다리다 취기에 젖어 단잠에 빠진 시간만큼 손은 부럽터 빼보려 하지만 빠져놓을 수가 없습니다.
"아빠 조그만 참고있어...."
라며 가까스로 둘이서 당겨서야 겨우 빠져 나옵니다.
불어트진 라면 사리를 닮은 살결사이로 밭두렁처럼 골이져 짝손이 되어버린 손
“니들은 젖은데 없나...”
술기운으로 버티다 눈을 떤 아버지의 입에서 나온 첫마디처럼 가난앞에 마주하는 서로가 있기에 행복은 그림자가 되지만은 않는것 같습니다.
하루살이 별들이 수 놓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아빠를 기다리는 두 아들은 빛바랜 사진첩 속에서 시간 여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엄마와 나란히 앉아 손잡고 찍은 사진을 보다 형의 눈물이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아버지가 혼을 낸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하얗고 부드러웠던 저 손이 투박한 손을 가질 동안 아버지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혼자 감내하며 보냈을까.
사진 속 그 고운 아버지의 손과 어제 잡아드렸던 그 손 사이에서 아들의 눈물은 길이 되어 흘렀습니다.
한가로운 일요일 오후 아버지는 깊은 남 잠에 빠지셨습니다.
동생의 손톱을 잘라주다 문득 아버지의 손톱도 잘라드리려 손을 잡는 순간 닭발 같은 손마디 마디 따라 훑고 또 훑터 봐도 닳고 닳아 아버지의 손톱은 보이질 않았습니다.
스스로 길을 내어 짊어진 아버지의 그 고단한 일상은 평생을 살아도 다 알지 못한 깊은 사랑이 그 손안에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손을 기억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 때부터 아무리 기억 이편저편을 뒤 벼 봐도 아버지의 손은 기름때로 늘 검은색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졸업식날 꽃다발을 불쑥 내미시던 아빠의 손은 휜색이었습니다.
늘 자식 위해 유난히 까맣고 마디 굵은 손가락 주름들 사이로 검은색으로 일기를 써시고 계셨던걸 이제서야 알게 된 아들은 숨은 사랑 앞에 영원의 길을 놓고 있었습니다.
“어째서 난 그 손을 한번 잡아주지 못했을까. 어쩌면 그 손이 이 세상 무엇보다 부드럽고 따뜻했을지도 모르는데,..... “
열 손가락 안에 자식을 담아 키운 내 아버지의 투박한 저 손 끝에 매달려온 세월 자식들을 위해 도구로 사용되었던 아버지의 그 거친 손을 사랑한다고 말해드리고 싶었습니다.
아버지......
저는 아버지의 그손을 “인생의 꽃”이라 불러드리렵니다.
ㅡ 노자규의 골목이야기 ㅡ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