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점의 고기를 먹는 것은 가벼운 일이고,
누이의 죽음을 구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일연지상경 구매지사중야
(一臠之嘗輕 救妹之死重也)
고상안, ‘태촌집’(泰村集) 중 ‘유훈’(遺訓)에서
조선 중기의 학자 고상안이 한 오누이의 일을 기록하면서 남긴 말입니다.
부친상을 당하자 누이는 너무나 슬퍼한 나머지 병을 얻어 위중해졌습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오빠가 권했습니다.
“기력을 회복하려면 고기를 먹는 것이 좋겠다.”
그러자 누이가 대답했습니다.
“만약 오라버니께서 드신다면 저도 먹겠습니다.”
그러나 오빠는 감히 고기를 먹지 못했습니다.
상주는 고기를 입에 대지 않는 것이 전통적인 예법이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누이는 죽고 말았습니다. 훗날 오빠는 후회하면서 통한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내가 고기를 먹지 않는 바람에 누이가 죽은 것이다.”
예는 인간이 오랜 세월 사회생활을 통해 경험적으로 도출해 낸 최적의 행동 규약이자 원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도덕적인 면과 결부되기 때문에 다른 어떤 원칙보다도 엄격하게 지켜지도록 요구돼 왔습니다.
그러나 사회생활은 상호작용의 연속입니다.
때로는 그 원칙들이 지켜지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그럴 때는 일의 경중을 살펴 과감하게 원칙에서 탈피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맹목적으로 원칙에만 얽매이다 보면 오히려 원칙을 지키지 않은 것만 못한 결과를 얻기도 합니다.
그래서 옛날부터 ‘권도(權道) 를 쓴다’는 말이 있는 것입니다. 원칙에 어긋나기는 하지만 부득이한 상황이기 때문에 임시로 융통성을 발휘하는 것을 뜻합니다.
- 권경열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 (서울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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