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라고 하면 곧바로 ‘자유의 여신상’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을 거다.
미국인들 역시 자국을 대표하는 용어로 ‘자유’를 꼽곤 하지.
그러나 이런 미국에서 지극히 폭력적이고 비인간적으로 자유를 질식시키는 일이 빈발하기도 했다는 것 역시 알아두기 바래.
그 대표적인 불상사로는 ‘매카시즘’이라는 게 있을 거고.
매카시즘이란 1950년 2월9일 조지프 매카시 당시 상원의원이 “국무부 안에 공산주의자 205명이 있다”라고 선언하면서 시작된 일련의 ‘공산주의자 색출’ 소동을 가리키는 용어야.
그런데 매카시 상원의원이 국무부 안의 공산주의자 암약을 폭로하며 미국 사회에 매카시즘의 헬게이트를 본격적으로 열어젖히기 전부터 ‘빨갱이 사냥’의 조짐은 여러 군데서 나타나고 있었다.
그중 하나는 미국의 상징인 할리우드였어.
1947년 10월,
할리우드를 무대로 여러 직종에 종사하던 43명에게 ‘비미활동조사위원회’의 출두 요구서가 날아든다.
이 43명은 미국 공산당에 가입한 적이 있거나 그렇다고 알려진 사람들이었지.
이 중 10명은 끝까지 조사위원회에서 증언하기를 거부하는데 ‘할리우드 텐’이란 명칭으로 역사에 기록된다.
이들에게 던져진 질문은 간단명료했어.
“당신은 공산당원을 현재 알고 있거나 과거에 알고 지냈는가?”
공산당원을 모른다고 하면 위증이라고 윽박질렀을 것이다.
알고 있거나 알고 지낸 적이 있다고 하면 그 사람을 신고하라고 강요했겠지.
할리우드 텐은 이에 처절하게 저항했어.
어떤 이는 조사위원회에서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미국 수정헌법 제1조를 유장하게 읊었다.
“의회는 종교의 자유,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 집회의 자유, 청원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률을 만들 수 없다.”
그런데 영화사 사장들은 미국 헌법 같은 것엔 조금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것 같다.
일치단결해서 할리우드 텐을 해고하고 다시는 일거리를 주지 않겠다고 맹세했거든.
그러나 이 서슬 푸른 빨갱이 사냥 앞에서 용감하게 “No!"를 부르짖은 사람들이 있었어 이 용감한 사람들의 명단은 다음과 같다.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배우 험프리 보가트, 그 아내이자 역시 전설적 배우인 로렌 배콜, 그레고리 펙, 윌리엄 와일러 감독, 존 휴스턴 감독….
이들은 미국 수정헌법 제1조를 위한 위원회를 만들어 매카시즘 반대 운동에 나서게 된다.
존 휴스턴 감독은 이렇게 부르짖었단다.
“적들보다 더 나쁜 것은 아무나 적으로 만드는 마녀 사냥꾼들이다.”
조지프 매카시가 미국 보수층으로부터도 비난받으며 알코올 중독으로 사망한 뒤, 즉 매카시즘의 광풍이 사라진 뒤에도 미국 영화계의 유명 인사들은 거침없이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밝히는 전통을 이어왔다.
얼마 전 함께 봤던 영화의 말론 브란도는 인종차별 반대의 깃발을 높이 들었으며, 인디언 차별 반대를 이유로 배우들의 최고 영예인 아카데미상을 거부하기도 했단다.
제인 폰다라는 배우는 미국과 전쟁 중이던 북베트남을 방문하여 미국의 전쟁범죄를 비난했다.
수전 서랜던은 저 유명한 9·11 테러 이후 미국 정부가 별 근거도 없이 이라크를 공격했을 때 이에 반대하는 단식 투쟁을 벌였다.
서랜던은 ‘빈라덴의 애인’이란 모욕과 ‘전 가족을 죽여버리겠다’는 협박에도 뜻을 굽히지 않았단다.
이라크 전쟁의 진실을 외면하는 언론인들에게 “부끄러움을 알아라!”고 일갈하는가 하면, 당시 미국의 부시 대통령에게 “악마이면서 병아리”라는 매우 험한 욕설을 날리기도 했어.
나는 이런 풍경이 미국의 힘이라고 생각해.
미국은 사실 말도 안 되는 매카시즘에 휩싸여 숱한 희생양을 낳고 더 말이 되지 않는 인종차별이 만연하며 있지도 않은 대량 살상 무기를 핑계로 전쟁을 일으킨 나라야.
그러나 최소한 이런 작태에 반대하는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수정헌법 제1조를 지닌 나라, 영화배우든 작가든 감독이든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고 심지어 자국 대통령을 악마, 병아리, 고릴라라고 놀린다 해도 무사한 나라이기도 하다.
그만큼 튼튼한 국가라는 의미다.
한국 연예인들의 사회적·정치적 참여의 규모는 미국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을 거야.
다방면의 연예인들이 숱하게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으니까.
하지만 나는 그들이 무슨 생각을 지녔고 그 생각을 어떻게 표현했으며 자신들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무엇을 했는지 등에 대해서는 기억나는 것이 많지 않다.
연예인들이 그렇지 뭐! 하고 생각하기까지 했어.
그런데 방송인 김제동씨가 일전에 경북 성주에서 열린 사드 반대 집회에서 보여준 ‘김제동판 헌법학 개론’이 나의 편견을 죽비처럼 내리치고 말았네.
“헌법 제1장 1조를 보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공화국의 뜻이 뭘까요? 함께 쌀을 나누어 먹는 나라다. 사람들이 편안하게 쌀을 나누어 먹지 못하고, 밥을 나누어 먹지 못하고, 아스팔트 위에 앉아 있도록 만들어 놓는다면 헌법 제1조 1항 위반입니다.”
이 연설을 들으며 나는 미국 수정헌법 제1조보다 100배쯤 더 아름다운 우리 헌법 1조의 존재를 새삼 깨달았다.
심지어 김제동이 험프리 보가트에 버금가고, 그레고리 펙보다 더 훤칠한 미남으로 보이지 뭐냐.
그가 했던 말 좀 들어봐.
“제1조 2항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권력이라는 단어는 헌법에 딱 한번 1조 2항에만 나옵니다. (…) 권력은 오로지 국민에게만 있고, 나머지는 모두 권한, 국민이 가진 권한을 위임받은 사람들입니다. (…) ‘대한민국은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를 영토로 한다.’ 즉, 국민은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에서 일어나는 일, 다시 말해서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해서 말할 권리를 가진다. 그러므로 성주의 문제에 관해서 외부인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대한민국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미국 할리우드 배우들은 기껏해야 그들이 지닌 수정헌법 제1조를 암송했을 뿐이지만 김제동씨는 우리 헌법의 의미를 끄집어내고 그 빛나는 언변으로 반들반들 윤을 내어 우리 눈을 부시게 했다.
이 얼마나 멋지고 자랑스러운 민주공화국의 시민이란 말이냐.
그런데 이 헌법학 개론 명강의를 두고 대한민국 국회의원 한 명은 1950년대 할리우드의 꼴통 영화사 사장들이나 할 소리를 내뱉고 있더구나.
“이토록 지독한 편견을 가진 사람이 공중파 방송의 진행자를 맡는 건 적절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나는 오히려 대한민국 헌법의 의미에 대해 이토록 지독한 편견을 가진 사람이 국회의원을 하는게 적절하지 않을 것 같다.
대한민국 국회의원이라면 최소한 한 시민의 주장에 대해 정중한 반론을 펴고 그 오류를 지적하는 민주적 소양 정도는 갖춰야 해.
대한민국 국회의원이나 되는 사람이 그 당연한 절차를 포기하고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표현을 이유로 남의 밥줄 끊을 궁리나 하고 있잖아?
하기야 어디든 갖다 붙이기만 하면 그 대상을 온통 시뻘겋게 물들이는 ‘종북이즘’이 판을 치는 대한민국을 생각하면 저 국회의원의 행태를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매카시즘의 시대로부터 한 갑자 이상의 세월이 흐른 오늘날에는 뭔가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억지로라도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들의 간절하지만 덧없는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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