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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회관 휴게실/세상이야기

단둥이라는 문구멍을 통해 보는 요지경 북한

by Ajan Master_Choi 2013. 12. 19.

 

 

최근 두번째로 단둥에 다녀왔습니다.

이제 10개월째인 중국 특파원 생활중에 단둥만 두번째입니다.

하지만 다른 특파원들에 비하면 매우 적은 수치입니다.

더 분발해야겠습니다.

그만큼 중국 특파원들은 단둥에 뻔질나게 갑니다.

북한에 큰 일만 터지면 단둥부터 달려갑니다.

단둥은 북한의 민낯을 볼 수 있는 유일한 문구멍이라서입니다.

아시는대로 단둥은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의 관문인 신의주와 마주하고 있습니다.

유일한 교역국인 중국과 오가는 물동량의 80%가 단둥을 거칩니다.

수많은 북한인들이 단둥에 나와 각종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단둥에 가면 북한의 안색을 살필 수 있습니다.

북한에 무슨 일이 생기면 단둥에 그 영향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확실하지는 않더라도 북한 내부의 소식을 들을 수 있습니다.

각종 북한발 '~카더라'가 돕니다.

무엇보다 북한 땅과 주민들의 모습을 찍을 수 있습니다.

멀리서나마 북한의 생활상을 담을 수 있습니다.

 

 

장성택 처형이라는 북한발 격변 사태가 일어났으니 단둥에 가는 것은 당연합니다.

단둥에서 하는 취재활동은 사실 매번 비슷합니다.

북한과 접촉이 많은 단둥 주민을 만나 얘기를 듣습니다.

한족도 있고 조선족(중국인 가운데 우리 중국 동포를 부르는 중국측 용어입니다. 중국 동포를 비하해서 부르는 말이 아니니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도 있습니다.

북한 식당과 북한 주재원이 있는 상점을 찾아다닙니다.

단둥 세관과 단둥 주재 북한 영사관도 필수 코스입니다. 운이 좋으면 북한 사람으로부터 북한 소식의 일단을 들을 수 있어서입니다.

유람선이나 임대 모터보트를 타고 신의주를 취재하고 촬영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특히 방송 기자인 저로서는 가장 중요한 일정입니다. 진짜 문구멍으로 들여다보는 과정입니다.

 

이번에도 이 모든 일정은 똑같았습니다.

그러다보니 보는 것, 듣는 것도 큰 차이가 없습니다.

다만 조그만 변화, 특이한 점에서 단서를 잡아 그 부분으로 더 깊히 취재해 들어갑니다.

이번에는 현지 중국인이 들려준 한 마디가 귀에 꽂혔습니다. '조화용 생화 판매가 예전 같지 않다더라.' 뭔가 북한 내부의 분위기를 알 수 있는 단서라고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생화시장으로 달려갔습니다.

 

우선 분위기가 김정일이 사망한 재작년은 커녕 1주기인 작년보다 훨씬 썰렁했습니다.

생화 물량을 대느라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모습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고요할 정도였습니다.

생화 업소 주인의 말입니다.

 

"평소보다 더 많이 팔리는 것은 맞다. 다만 재작년에는 단둥 시내 꽃이 동이 났었다. 조화용 국화를 구할 수가 없어 꽃가게마다 난리가 났다. 지난해 이맘때도 비슷했다. 꽃이 모자라 아우성이었다. 그런데 올해는 영 다르다. 꽃이 남아 돈다. 그러다보니 가격이 별로 오르지 않았다. 손해볼 정도는 아니지만, 어떻든 분위기는 다르다."

 

다른 생화 업소 주인은 엉뚱한 소문까지 말합니다.

 

"요즘 북한에서 조화용 국화를 대량으로 생산한다는 말이 돌던데?"

 

당장 급한 식량 생산도 어려운 북한에서 웬 꽃 재배.

그런 근거 없는 소문이 돌만큼 생화 시장 경기가 좋지 않은 것입니다.

장성택 처형 등으로 상황이 어수선하다보니 조문 준비에 예전처럼 몰두할 수 없었던 것 아닌가 해석됐습니다.

 

 

새벽같이 임대 모터보트를 타고 둘러본 신의주와 그 주변 농촌의 모습도 같으면서 조금 달랐습니다.

빨래하는 북한의 아낙네, 곡식이나 농기구를 들고 오가는 사람들, 자전거를 몰고 어딘가로 급히 가는 할아버지, 평소 보던 풍광이었습니다.

하지만 띄엄띄엄 총을 메고 서있는 군인의 수는 확실히 늘었습니다.

모터보트로 우리를 안내하던 중국인도 증언합니다.

 

"장성택 처형 이후 분명히 늘었어요. 평소 비어있던 초소에도 이제는 군인들이 다 배치돼 있습니다. 심지어 산 위의 포대에까지 말이죠. 정규 인민군 뿐아니라 민병까지 동원된 듯 합니다."

 

그런데 겉으로 삼엄한 모습과 다르게 실제 분위기는 또 달랐습니다.

중국인 안내인은 북한 군인과 대화하도록 도와주겠다더니 강변을 지키는 어느 초병 앞으로 다가갔습니다.

그러더니 우리 말로 외쳐 부릅니다.

 

"개XX, 개XX."

 

우리 욕을 비슷한 발음으로 구사합니다.

그러더니 중국어로 떠들어댑니다.

 

"이리 와봐. 할 말 있어. 우리 친구가 너를 만나고 싶어해. 얘기 좀 해봐."

 

북한 초병은 겉으로 험악한 표정을 짓더니 우리 말로 대꾸합니다.

 

"시끄러워. 저리 가."

 

안내인이 다시 우리 말로 말합니다.

 

"담배, 담배."

 

혹시 북한 주민과 접촉하면 건네기 위해 우리가 사갔던 중국 담배 2보루를 흔듭니다. 순간 초병은 움찔합니다.

 

"담배?"

 

배쪽으로 올 듯 하더니 주변의 눈치를 흘깃흘깃 봅니다.

그리고는 빨리 가라는 시늉으로 그저 손만 훼훼 휘두릅니다.

그러자 안내인이 단념하고 한 마디 남깁니다.

 

"개XX."(이 광경은 저희 몰래 카메라가 고장으로 작동되지 않아 녹화하지 못했습니다. 천추의 한입니다.)

 

평소에도 자주 접촉해본 모습입니다.

안내인은 취재팀에 이런 제안도 했습니다.

 

"내게 2천 위안(우리 돈 약 36만원)을 주면 북한 군인과의 대화를 녹음해주겠다."

 

솔깃한 얘기였습니다.

하지만 포기했습니다.

우선 안내인이 썩 미덥지 않아서였습니다.

무엇보다 취재 윤리상 바르지 않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렇게 돈을 주고 받아온 대화의 신뢰성을 담보할 수 없었습니다.

또 실제 북한 군인을 만날지 아는 조선족에게 연기를 시킬지 누가 알겠습니까?

그런데 이 경험은 나중에 웃지 않을 수 없는 일화로 이어집니다.

단둥 주재 북한 영사부 건물 앞에서 조문 하는 북한인들의 모습을 취재할 때입니다.

한 통신사 사진기자로 일하는 서양인을 만났습니다.

서로 취재 경험을 나누다 그가 제게 물었습니다.

 

"모터보트를 타고 신의주 취재를 했나요?"
"네, 오늘 아침에 했습니다."

"위험하지는 않았나요?"
"별반 위험한 일은 없었습니다."

"전 이틀전에 갔었는데요, 내 모터보트를 몰던 중국인은 바보예요. 북한 군인 앞에 배를 세우고 싸움을 하는 통에 아연실색 했어요."
"네? 뭐라면서 싸웠는데요?"

"글쎄요, 북한말인지, 러시아말인지 모르겠는데, 개스키, 개스키 하던데요?"

 

순간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돌아서서 눈물까지 닦아야 했습니다.

그 서양 기자에게 위험한 상황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설명하려다 그만 뒀습니다.

한국과 중국 문화의 속성까지 알기 쉽게 설명할 만큼 제 영어가 능숙하지 않은데다 그냥 위험했다고 기억하는게 이번 단둥 취재에 대해 더 깊은 인상을 남길 것 같아서였습니다.

 

단둥 주재 북한 영사부 취재도 이번 출장의 하일라이트였습니다.

고생스러웠다는 측면에서 조문을 마치고 나오는 북한인들을 숱하게 따라갔습니다.

대부분 투명인간 취급을 받았습니다.

아무 대꾸도 없이 외면한 채 거의 뛰다시피 길을 재촉했습니다.

훽 밀어붙이고 눈을 부라리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여성들은 5~6명씩 뭉쳐서 자기들끼리만 얘기를 했습니다.

기자에게 절대 대꾸도 하지 말라는 학습을 받은 듯 했습니다.

오전까지였던 조문시간이 거의 끝나가면서 조문객 수도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마음은 급해지는데 실적은 없었습니다.

수십번의 무시에 가슴이 찢어져 너덜너덜 해졌습니다.

인상이 꽤 험악한 한 50대 남성이 일행과 조금 뒤처졌습니다.

 

'잘못하다 맞는 것 아니야?'

 

밑져야 본전이라는 심정으로 뒤따라가 말을 붙였습니다.

 

"저는 남측 기자인데요, 아직도 안에 조문객이 많나요?"

 

의외로 친절한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오전 일찍은 많았는데, 지금은 그렇게 많지는 않습니다."

 

당연히 매달렸습니다.

 

"한말씀만 여쭐께요. 이번 조문기간에 북조선으로 돌아간 분도 많죠?"
"네? 뭐라고요?"

"조문을 위해 북조선으로 돌아간 분들이 많죠?"
"네, 네, 네, 네."

"이번에 돌아갔다가 아예 나오지 않는 분도 계시나요?"
"그건 잘 모르겠어요. 안에 영사부에 들어가서 물어보세요."

"영사부 직원들이 남측 기자는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데요."
"허, 허, 허."

 

그러더니 차를 타고 휙 가버렸습니다.

그래도 오늘 만난 북한인들 가운데 가장 친절했습니다.

감사할 지경이었습니다.

단둥 취재는 항상 비슷합니다.

그 조그만 문구멍으로 들여다보는 북한도 항상 비슷해보입니다.

그래도 올때마다 뭔가 요지경 속에 섬광처럼 지나가는 색다른 그림이 나옵니다.

그래서 기자들은 북한에 특별한 일이 생기면 기약도 없는 단둥 출장에 나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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